[뉴스] 대학생 저작권 도둑질하는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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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광고천재 이태백’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극이 진행되면서 새삼 관심을 끌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남자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이제석 소장이다. 현재 이제석광고연구소 대표로 있는 그는 광고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2006년 뉴욕으로 무작정 날아가 대학에 편입해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원쇼 광고제’에서 최고상을 따내며 ‘공모전 사냥’을 시작했다. 이후 1년 동안 쓸어 담은 트로피만 해도 무려 29개. 이 무렵부터 이 소장은 ‘공모전의 신화’라는 타이틀로 국내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수많은 대학생이 공모전에 도전한다. 그만큼 공모전도 많고 분야도 다양하다. 그런데 왜 여기선 ‘제2의 이제석 신화’가 등장하지 않는 것일까. 의문은 인터넷 검색창에 ‘공모전 저작권’이라는 문장을 입력하는 순간 해결된다. 검색에 딸려 오는 글에는 대학생들의 아우성이 한가득이다. 대부분 제출한 공모전 저작권을 돌려받고 싶다거나 보호받고 싶다는 내용이다. 심지어 탈락한 자신의 공모작 아이디어를 슬쩍 바꿔 돈을 버는 기업에 대한 상담도 있다. 글을 올린 대학생은 “제출하신 모든 응모작과 수상작의 저작권은 주최 측으로 귀속됩니다”라는 규정이 있었음을 조심스럽게 밝혔다. “이걸 알면서 했으니 안 되겠죠”라는 끝맺음과 함께.
‘이걸’ 알면서 공모전에 목맬 수밖에 없는 게 대학생의 처지다. 출품자가 불리한 규정이라는 걸 알지만 물불 가릴 수 있겠는가. 우리는 취직이 너무나 고프고 이력서에 올릴 입상 기록 한 줄이 아쉽다. 그래서 졸린 눈 비벼가며 아이디어를 짜내고 작품을 고치고 또 다듬는다. 물론 모든 공모전이 그런 대학생들의 피땀 어린 결과물을 대가 없이 갖진 않는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출품된 작품의 저작권을 수상 여부에 관계없이 소유하는 관행을 지닌 게 현실이다. “정말 좋은 공모작은 떨어뜨리고 나중에 조용히 주최 측이 쓴다”는 근거 없는 소문도 이런 구조에선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우리나라엔 제2, 제3의 이제석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젊은이들의 아이디어를 귀하게 여기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 내 아이디어가 온당한 대접을 받으며 사회에서 구현되는 경험은 또 다른 도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사실 이 소장이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지방대’라는 편견에 부닥쳐 취업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정당하게 대접해 주는 곳에서 아픈 청춘을 성공으로 치환했다. 우리나라도 청년들의 꿈을 제대로 키워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 뺏기는 경험은 청춘들의 꿈을 짓밟는다. 이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됐다. 청춘들에게 필요한 건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위로보다 지금보다 조금 더 공정한 세상이다.
장 순 현 성균관대 스포츠과학 정치외교학 4학년
한국에서도 수많은 대학생이 공모전에 도전한다. 그만큼 공모전도 많고 분야도 다양하다. 그런데 왜 여기선 ‘제2의 이제석 신화’가 등장하지 않는 것일까. 의문은 인터넷 검색창에 ‘공모전 저작권’이라는 문장을 입력하는 순간 해결된다. 검색에 딸려 오는 글에는 대학생들의 아우성이 한가득이다. 대부분 제출한 공모전 저작권을 돌려받고 싶다거나 보호받고 싶다는 내용이다. 심지어 탈락한 자신의 공모작 아이디어를 슬쩍 바꿔 돈을 버는 기업에 대한 상담도 있다. 글을 올린 대학생은 “제출하신 모든 응모작과 수상작의 저작권은 주최 측으로 귀속됩니다”라는 규정이 있었음을 조심스럽게 밝혔다. “이걸 알면서 했으니 안 되겠죠”라는 끝맺음과 함께.
‘이걸’ 알면서 공모전에 목맬 수밖에 없는 게 대학생의 처지다. 출품자가 불리한 규정이라는 걸 알지만 물불 가릴 수 있겠는가. 우리는 취직이 너무나 고프고 이력서에 올릴 입상 기록 한 줄이 아쉽다. 그래서 졸린 눈 비벼가며 아이디어를 짜내고 작품을 고치고 또 다듬는다. 물론 모든 공모전이 그런 대학생들의 피땀 어린 결과물을 대가 없이 갖진 않는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출품된 작품의 저작권을 수상 여부에 관계없이 소유하는 관행을 지닌 게 현실이다. “정말 좋은 공모작은 떨어뜨리고 나중에 조용히 주최 측이 쓴다”는 근거 없는 소문도 이런 구조에선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우리나라엔 제2, 제3의 이제석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젊은이들의 아이디어를 귀하게 여기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 내 아이디어가 온당한 대접을 받으며 사회에서 구현되는 경험은 또 다른 도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사실 이 소장이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지방대’라는 편견에 부닥쳐 취업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정당하게 대접해 주는 곳에서 아픈 청춘을 성공으로 치환했다. 우리나라도 청년들의 꿈을 제대로 키워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 뺏기는 경험은 청춘들의 꿈을 짓밟는다. 이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됐다. 청춘들에게 필요한 건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위로보다 지금보다 조금 더 공정한 세상이다.
장 순 현 성균관대 스포츠과학 정치외교학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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