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와 공모전 > 알럽콘 공모뉴스

본문 바로가기

[뉴스] 서예와 공모전


본문

일반적인 미술작품발표 형태는 단체전, 그룹전, 개인전 등이 있으며, 종류에서도 주제전, 추모전, 아트페어, 비엔날레 등이 있지만 서예가는 보통 작가등단의 형태가 개인전, 그룹전, 혹은 평론가의 의한 추천은 전무한 실정이고 공모전 경력이 타 미술장르에 비하여 절대적이다.

공모전의 순기능은 적은 비용으로 많은 수가 참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획일적인 작품패턴으로 콜렉터 또는 관객의 호기심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시대적 요구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발전적 측면보다 정체되거나 퇴보해서 공모전 무용론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은 일부의 얘기만은 아니다.

전시의 기본은 기획자, 작가, 관람자이다. 하지만 전국의 어느 서예공모전이든 작가의 경력으로 운영, 심사를 하는 것이 순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주제가 분명하지도 특색이 있지도 않은 공모전을 통해 배출된 초대작가 역시 모방하고 답습하는 것이 작품창작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공모전의 목적은 신진작가 발굴에 있다. 신진작가의 발굴양성은 새로운 작품 사조 혹은 창작에 대한 다양하고 새로운 목소리를 수용하여야 한다는 말인데 비슷한 크기나 개성 없는 서풍, 서체나 표현방법으로 틀에 정해진 공모전이 개성의 발현을 저해하여 관객의 미적욕구 충족이나 작품과 관람자의 대등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부정적 요소이다.

타 미술 장르에 비해 서예공모전은 붓과 먹을 다루는 기능의 숙련에 집중되어 심사를 하는 것 역시 오랜 기간 공모전 형태의 작품제작에 익숙한 서예가들이 실험성이 높은 작품을 시도하지 못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서예관련 공모전이 한해 약 4000여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지만 대한민국, 전국이라는 명칭 외에 전시주제나 특색을 갖춘 공모전이 없다보니 저마다 수상작을 발표하고 성과를 내지만 그 중 작가의 역량을 발휘하여 창작활동으로 인정받는 작가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서예공모전 누구를 위한 전시인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는 작가가 주도적으로 이끄는 시대보다는 관객이 주도하는 시대라는 생각을 해본다. 과거 국전시대처럼 국전의 입선이 곧 미술시장의 진입과 작가의 명성을 알리는 시기는 지났다. 관객과 콜렉터가 없는 전시는 생각할 수 없다. 불특정의 관객을 계몽하는 존재로 생각하며 서예작품에 대한 경배의 마음으로 숭상하라는 것이 공모전의 목적이라 오도하는 것은 서예공모전 발전의 저해요인인 것이다.

서예공모전의 출품자는 본인의 작품을 외부의 평가를 받는 기회의 장으로 생각하여야 할 것이며 심사위원의 심사평은 주례사처럼 형식적이기 보다는 신랄한 비평의 목소리, 새로운 창작에 대한 능동적 수용, 작품선정에 있어 명확한 선정기준을 심사평을 통한 공표로 심사에 대한 신뢰를 높여야 할 것이다.

서예 공모전에서 전시주제의 부재와 작가, 기획자의 엄격한 분업이 되지 못한 상황이라 잡음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공모전의 뒤는 항상 말이 무성하다. 공정성이 생명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쓰기 어려운 실정이며 출품자는 본인의 작품이 선정되지 못한 아쉬움을 비리 혹은 줄서기의 잘못으로 이해하는 몰상식한 사고는 지양하여야 할 것이다. 현재 서예 공모전은 모방의 악순환과 하향평준화로 전국의 모든 서예공모전은 초대작가라는 명칭을 받기위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서예공모전에서 수상은 심사위원간의 암투와 줄서기는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 돼버린 서글픈 현실이다. IT시대에 서예가 예술속에서 어떻게 생명력을 유지하며 새로운 세대에게 다가 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필자만의 헛된 이상이 아니길 바란다.

김봉석 서예가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판 전체검색